저는 어렸을 때부터 homeless 분들을 보며 이런 생각을 해 봤습니다 ‘내가 이다음에 크면 저 사람들에게 도움과 행복과 사랑을 전해 주고 싶다.’ 엄마, 아빠가 저한테 첫 용돈을 줬을 때부터 길거리에 노숙자가 보일 때마다 큰돈은 아니지만, 그래도 동전 몇 개나 달러 한 장, 아니면 제가 아끼던 젤리나 스낵바를 웃으면서 주곤 했습니다. 하지만 크면서 저는 이것보다 더 크게 도움이 될 수 있는 무언가를 하고 싶었습니다.
마침 코로나가 시작되어 신부님께서 한 끼 나눔 봉사를 만드신 순간 저는 이 생각을 했습니다 ‘드디어 내게 기회가 왔구나, 드디어 내가 더 크게 도와줄 수 있겠구나. 드디어 나도 하느님의 제자로서 이 사람들에게 도움을 줄 수 있겠구나.’저는 봉사하러 갈 때마다 매 순간 설레고 너무 기뻤습니다. 봉투에다 바나나, 샌드위치, 핫도그를 담을 때마다 사랑의 한 끼 나눔 그 이름처럼 아주 소중하고 다정하게 담았죠. 시간이 좀 지나고 나서 제가 처음으로 다운타운에 딜리버리를 엄마와 같이 나갔을 때 제일 행복했어요. 다른 봉사자들은 떨린다고 얘기를 하셨는데 저는 떨림이 없고 늘 신나고 기쁘기만 했죠.
저는 한 끼 나눔 봉사하면서 많은 것을 배웠습니다. 특히 저는 homeless 분들의 표정이 슬프고, 항상 서러운 마음으로 살 거로 생각했는데, 그게 아니었어요. 물론 불안할 순 있죠. 하지만 핫도그를 받는 순간에 환한 미소와 따뜻한 목소리로 “감사합니다, 하느님의 축복을 받으십시오.”라고 말해 줬을 때 저는 울컥했습니다.
본인의 상황 때문에 매우 슬프고, 무섭고, 불안할 텐데, 밝은 표정으로 이토록 상냥한 말을 해주니, 저는 감동을 받았어요. 저는 그 순간, 우리 인생이 항상 좋은 일만 있을 수는 없겠기에 혹시라도 어려운 일이나 고통이 닥치더라도, 두려움이나 우울감, 혹은 죄책감에 빠지기 보다는 계속 웃어야 한다는 걸 배웠어요.
무슨 일이 생기든 하느님께 기도하고 의지하며 웃을 이유를 계속해서 찾고, 그 많은 어려움 속에서도 좋은 일을 찾아낼 수 있다는 것도 배웠어요. 어려움 속에서도 이분들처럼 밝게 웃어야 하고, homeless 분들이 어려운 상황에서 따뜻하고 행복하게 웃을 수 있다면, 저 역시도 웃을 수 있다는 걸 생각했습니다.
작년 여름에 표정이 아주 어두운 할아버지가 계셨습니다. 옷도 많이 없었고, 아주 많이 말랐었고, 더운 여름날에 땀을 뻘뻘 흘리며 걸어 다니고 있었어요. 최근에 아내가 돌아가셔서 너무 힘들고 본인도 견뎌낼 수 있는지 모르겠다고 하셨습니다. 할아버지는 먹을 것도 없고, 마실 것도 없고, 음식도 잘 넘어가지도 않고, 그냥 너무 지쳤고, 그만 살고 싶다고 말씀하셨어요.
이 말을 듣고 나서 제가 핫도그와 물을 전해 주면서, “부인께서는 천국에서 평온하게 쉬고 계실 거예요. 걱정하지 마세요. 제가 할아버지와 부인을 위해 기도를 많이 할게요. 그리고 앞으로 좋은 일이 분명히 생길 테니 너무 슬퍼하지 마시고 든든하게 핫도그 드세요. 좋은 하루 보내세요.” 이 말을 할아버지께 했을 때 할아버지는 기쁨의 눈물을 흘리시며 진심으로 감사하다고 하느님의 많은 사랑과 축복을 받으라고 저에게 말해 주셨어요.
그래서 저는 돌아오는 길에 좋은 행동과 말이 얼마나 큰 영향이 있는지 배웠습니다. 어려운 일들의 원인은 해결할 순 없어도, 어려운 상황들이 우리 앞에 나타나면 힘차게 하느님을 믿으면서, 희망을 품고 견뎌내야 하고, 어려운 일들 후에 하느님께서는 분명히 더 크고 좋은 것을 주실 거라는걸, 혹시 주시지 않으셔도 우리가 잘 견뎌낸 것만으로도 행복하리라는 걸 저는 잘 알고 있고 믿습니다.
마지막으로, 크든 작든 한 번의 친절한 행동이 누군가의 하루를 어마어마하게 변화시킬 수 있다는 것도 배웠습니다. 재가 봉사를 하면서 제일 많이 경험하고, 기억에 남는 것이 이분들의 변화된 밝은 표정이었습니다.
앞으로도 열심히 봉사하겠습니다. homeless 분들 축복의 말처럼 모든 봉사자분들의 행복을 기원합니다.
2024년 1월 28일
이 엔젤
우리 한 끼 나눔이 오는 2월 2일에 2주년을 맞이합니다. 지금도 그 때가 생생합니다. 준비할 겨를도 없이 다급하게 서둘러서 벌였던 운동인데도, 시작한지 불과 단 한 주 만에 24명의 후원자가 5,579불을 만들어 주셨습니다. 그리고 오늘까지 2년에 걸쳐 여러 단체 및 350명의 개별 후원자께서 총 138,353불을 맡겨 주셨습니다.
103명의 봉사자가 각자 작게는 한 두시간에서 많게는 400시간까지 수고해 주셔서, 그렇게 합친 시간이 3천시간도 훨씬 넘습니다. 이 운동을 기도하면서 돕는 분들도 많은 데, 다른 기도를 제외하고도, 묵주기도만 총 724,518 단이었습니다. 이런 노력과 정성이 모여서 모두 26.000 끼를 나눠 드릴 수가 있었습니다.
저는 하느님이 너무 고맙습니다. 그리고 저는 여러분이 너무 고맙습니다. 오늘 2 독서 말씀의 한 구절이 제 마음속에 계속 머물고 있습니다. “하느님께서는 여러분을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 살게 해 주셨습니다.” 가난한 사람을 위해 지속적으로 기도하고, 지속적으로 자선하고, 지속적으로 봉사한다는 것은 여러분이 예수님 안에 살고 있다는 증거입니다.
여러분이 예수님 안에 잘 살아 주셔서, 그런 여러분이 저는 너무나 고맙습니다. 그리고 여러분을 예수님 안에 살도록 해 주신, 그렇게 만들어 주신 하느님이 저는 너무나 고맙습니다.
오늘 복음은 예수님의 행복 선언입니다. 모두 8가지가 나옵니다. 줄줄 외울 수 있다면 더 좋겠지만, 그냥 한 가지로 요약 한다면, 행복하여라, 예수님 안에 사는 사람들! 제 생각에는 뭐 이렇게 요약해도 별문제 없을 것 같습니다.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 예수님께 의지하는 사람들, 예수님을 따르는 사람들, 예수님을 사랑하는 사람들, 예수님을 본받고자 하는 사람들, 다시 말해 예수님 안에 사는 사람은 행복합니다.
예수님은 우리를 사랑하셔서, 스스로 가난을 택하신 분입니다. 예수님은 가진 것도 별로 없이 가난했습니다. 집도 땅도 돈도 없었습니다. 부모도 가난했고, 어울리던 친구들도 비슷하게 가난했습니다. 그 뿐 아니라 예수님의 내면까지도 가난하셨습니다. 하느님으로서의 권능도 영광도 다 비우셨습니다.
예수님은 부유하셨지만 스스로 가난하게 되셨습니다. 죄도 많은 우리를 너무나 사랑하셨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예수님의 그 사랑에 감사드리고, 그 은혜를 갚아 드리는 최고의 방법은, 지금 헐벗고 굶주린 이웃을 돌보는 일입니다. “행복하여라, 자비를 베푸는 사람들, 그들은 자비를 입을 것이다” 우리가 하느님께 자비를 베풀어 줄 수는 없습니다. 우리가 자비를 베풀어야 할 사람은 가난 속에서 고통받는 우리 형제 자매입니다.
진복팔단, 예수님의 행복선언은 우리가 예수님 안에서 예수님처럼 살아가는 방법입니다.
"행복하여라 마음이 가난한 사람들 하늘 나라가 그들의 것이다. 마음이 가난한 사람은 나의 재능, 나의 시간, 나의 생명이 오롯이 전부 다 내 것이라는 착각을 하지 않습니다. 마음이 가난한 사람은, 하느님만 저 멀리 제쳐 둔 체, 그저 하느님으로부터 받은 선물에만 기대고 만족하며 살 지를 않습니다.
마음이 가난한 사람은 겸손한 사람이고 거룩한 사람입니다. 마음이 가난한 사람은 하느님 앞에서 아무것도 드릴 것이 없는 사람입니다. 하지만 마음의 가난은 그를 구해 줄 것이고, 마침내 하느님의 가장 큰 선물, 하느님의 나라를 받게 해 줄 것입니다.
예수님 안에서 살아가는 것이 참된 행복입니다. 어려움이 닥쳐도 박해를 당해도 하느님의 사랑이 우리를 감싸주고 계심을 그는 압니다.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님을 성부께서 당신 품으로 안아 주셨듯이, 그렇게 그를 안아 주실 것입니다.
예수님 안에서, 예수님 처럼, 그렇게 마음이 가난한 사람, 그렇게 온유한 사람, 그렇게 의로움에 주리고 목마른 사람이 되게 해 달라고 기도드립시다.
예수님 안에서 예수님 처럼, 마음이 깨끗한 사람, 평화를 이루는 사람이 되게 해 달라고 기도 드립시다. 예수님 안에서 예수님 처럼 고통 받는 이웃에 더욱 가까이 가게 해 달라고 기도 드립시다.
2023년 1월 28일
김지완 신부